







<학교폭력, 그 단어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이야기>
-아이들은 아직 배우는 중입니다-
초등학교 학교폭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마지막 학폭위 회의를 다녀왔다.
19호 회의라는 번호만 보아도, 지난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학교폭력 관련 사안이 다뤄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초등학교에 무슨 학교폭력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체감하기로는 두 달에 한 번꼴로 학폭 사안이 발생하는 것 같다.
오늘 열린 마지막 회의에서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아이의 이름이 가해 학생 명단에 올라와 있었다.
이름을 보는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3학년 때 우리 아이와 가장 친하게 지내며 우리 집에도 종종 놀러 오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회의록 속 ‘가해자’라는 단어로 그 아이의 이름을 마주하니, 마음이 더 어렵고 힘들었다.
다행히 이번 사안은 비교적 경미한 수준이었고,
당사자 간의 합의와 충분한 교육을 통해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 일을 계기로, 요즘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학교폭력위원회 회의에 참여하며,
또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을 직접 상담하는 현장에서 느끼는 점은
생각보다 사소한 갈등이 학교폭력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생들은,
감정을 조절하고 말로 풀어내는 능력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작은 오해가 쉽게 큰 갈등으로 번진다.
놀림을 참고 참다가 욕설이나 신체적 행동으로 대응하면서 다툼으로 번지기도 하고,
다툼 이후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쟤랑 놀지 마”라며 무리 지어 한 아이를 배제하는 행동이
학교폭력 심의 사안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또래와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서히 고립되던 아이가
시간이 흐르며 집단 따돌림 문제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내와 자기조절을 배우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의 미숙함이
적절한 개입 없이 방치될 경우,
갈등은 교육적 조정의 범위를 넘어, 제도적 판단의 영역으로까지 흘러가게 된다.
한편, 실제로 학교폭력 피해를 입고 정당하게 신고했음에도
사실이 왜곡된 소문으로 퍼지면서
“조금만 불편하면 학폭으로 신고하는 아이”라는 낙인이 씌워져 오히려 피해 학생이 고립되는 상황도 목격했다.
이처럼 매우 다양한 상황이
‘학교폭력’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이면서,
그 단어가 주는 낙인과 두려움이
또 다른 2차, 3차 상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너, 학폭으로 신고할 거야”라는 말이 협박처럼 사용되거나,
“쟤 학폭위 올라갔던 애야”라는 말이 따라다니며
한 아이에게 오래 남는 꼬리표가 되기도 한다.
그 꼬리표는 다시 관계에서 배제와 고립으로 이어진다.
학폭 사안 처리 과정에서 아이들이 겪는 심리적 스트레스 역시 결코 작지 않다.
실제로 이러한 사건을 견디지 못해
우울, 자해,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
모든 아이들이 다 함께 원만하게 지내면 좋겠지만,
성장 과정에 있는 아이들에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무엇이 학교폭력에 해당하는지,
어떤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지에 대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구체적인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바보야’, ‘멍청이’와 같은 말도 학교폭력으로 인정될 수 있다.)
아울러 학교폭력 사안으로 논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평생 ‘가해자’로 낙인 찍는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분명히 전달되어야 한다.
학교폭력이라는 단어의 자극성과 선정성에
어른들이 먼저 과도하게 분노하며
낙인을 찍는 데 앞장서기보다,
이 불미스러운 경험을 한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회복하고,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며 성장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니라,
분명한 책임 위에 이해와 공감을 더해
더 많은 아이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그리고 이 경험이 상처로만 남지 않고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세심하고
조금 더 성숙해졌으면 하고 바란다.
한국중독예방센터 대표
이경주
<학교폭력, 그 단어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이야기>
-아이들은 아직 배우는 중입니다-
초등학교 학교폭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마지막 학폭위 회의를 다녀왔다.
19호 회의라는 번호만 보아도, 지난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학교폭력 관련 사안이 다뤄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초등학교에 무슨 학교폭력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체감하기로는 두 달에 한 번꼴로 학폭 사안이 발생하는 것 같다.
오늘 열린 마지막 회의에서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아이의 이름이 가해 학생 명단에 올라와 있었다.
이름을 보는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3학년 때 우리 아이와 가장 친하게 지내며 우리 집에도 종종 놀러 오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회의록 속 ‘가해자’라는 단어로 그 아이의 이름을 마주하니, 마음이 더 어렵고 힘들었다.
다행히 이번 사안은 비교적 경미한 수준이었고,
당사자 간의 합의와 충분한 교육을 통해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 일을 계기로, 요즘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학교폭력위원회 회의에 참여하며,
또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을 직접 상담하는 현장에서 느끼는 점은
생각보다 사소한 갈등이 학교폭력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생들은,
감정을 조절하고 말로 풀어내는 능력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작은 오해가 쉽게 큰 갈등으로 번진다.
놀림을 참고 참다가 욕설이나 신체적 행동으로 대응하면서 다툼으로 번지기도 하고,
다툼 이후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쟤랑 놀지 마”라며 무리 지어 한 아이를 배제하는 행동이
학교폭력 심의 사안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또래와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서히 고립되던 아이가
시간이 흐르며 집단 따돌림 문제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내와 자기조절을 배우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의 미숙함이
적절한 개입 없이 방치될 경우,
갈등은 교육적 조정의 범위를 넘어, 제도적 판단의 영역으로까지 흘러가게 된다.
한편, 실제로 학교폭력 피해를 입고 정당하게 신고했음에도
사실이 왜곡된 소문으로 퍼지면서
“조금만 불편하면 학폭으로 신고하는 아이”라는 낙인이 씌워져 오히려 피해 학생이 고립되는 상황도 목격했다.
이처럼 매우 다양한 상황이
‘학교폭력’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이면서,
그 단어가 주는 낙인과 두려움이
또 다른 2차, 3차 상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너, 학폭으로 신고할 거야”라는 말이 협박처럼 사용되거나,
“쟤 학폭위 올라갔던 애야”라는 말이 따라다니며
한 아이에게 오래 남는 꼬리표가 되기도 한다.
그 꼬리표는 다시 관계에서 배제와 고립으로 이어진다.
학폭 사안 처리 과정에서 아이들이 겪는 심리적 스트레스 역시 결코 작지 않다.
실제로 이러한 사건을 견디지 못해
우울, 자해,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
모든 아이들이 다 함께 원만하게 지내면 좋겠지만,
성장 과정에 있는 아이들에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무엇이 학교폭력에 해당하는지,
어떤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지에 대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구체적인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바보야’, ‘멍청이’와 같은 말도 학교폭력으로 인정될 수 있다.)
아울러 학교폭력 사안으로 논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평생 ‘가해자’로 낙인 찍는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분명히 전달되어야 한다.
학교폭력이라는 단어의 자극성과 선정성에
어른들이 먼저 과도하게 분노하며
낙인을 찍는 데 앞장서기보다,
이 불미스러운 경험을 한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회복하고,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며 성장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니라,
분명한 책임 위에 이해와 공감을 더해
더 많은 아이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그리고 이 경험이 상처로만 남지 않고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세심하고
조금 더 성숙해졌으면 하고 바란다.
한국중독예방센터 대표
이경주